노란 머리의 여인

시나브로 나에게로
- 영진 -
여인이 탁자에 기대고 부드럽게 팔을 감싸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 모습. 평화롭고 안정된 모습이다. 찬찬히 톺아보는 피카소의 의중. 햇살이 비치는 따뜻한 우도 백사장. 그리고 떠나기 전에 하나쯤 챙겨가고는 하는 작고 예쁜 산호들.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한 분위기를, 하루의 추억으로 캔버스에 담아두고자 했던 피카소의 욕망을 헤아려본다. 근접하긴 했지만 부족하다. 또 다른 생각. 인간이라면, 아니 인간이기에 항상 느끼는. 결핍된 것들에 대한 욕망. 피카소는 어느 날 발견한 풍경을, 그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 그의 화실로 가져가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이 또한 하나의 ‘주관적’ 해석일 뿐. ‘돈안지유돈(豚眼只有豚) 불안지유불(佛眼只有佛)’. 타인의 의중을 살펴갈수록 넓어지는 나에 대한 이해. 깊어지는 ‘주관’. 그렇다면, ‘객관’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인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 ‘대화’는 가능한가? ‘대화’란 사실 ‘군맹평상(群盲評象)’과 다를 바 없는게 아닐까? 더해가는 생각 속으로 침전하는 나. 시나브로 나에게로. 여인의 따뜻함과 여인의 평화로움과 여인의 안정감 속에서 시나브로 나에게로.
탁자 위의 죽음
- 성웅 -
사람을 비추는 높은 세상의 빛이 차갑다. 선명한 무늬 위로 몇 가닥 따뜻한 기억이 흐른다. 놓아라, 아니 흘러갈까. 웅크린 여인의 품 속에 감춘 시간이 빙글빙글 헛바퀴를 돌고, 쏟아지는 피로가 그 위를 덮는다. 세상의 캄캄한 모서리에서 차갑게 식은 기억이 끊어질 듯 가엾게 진동하며 그녀의 마지막 숨을 데운다. 세상이 달그락거린다. 시간은 빼앗긴 바 복수를 하듯 그 소매를 걷고 망토를 감춘다.
더운 여름날의 낮잠
- 현종 -
여름 날, 엄마품같은 양팔은 엎드린 여인의 얼굴을 조심히 감싼다. 내리쬐는 햇볕에 팔과 볼이 붉게 익고 옷과 노란머리는 점점 녹아내린다. 뜨거움에 오감이 무뎌져간다. 그 화끈한 열기에 정신마저 녹아 혼미해진다. 붕 뜨는 기분과 함께 우주를 떠돈다. 멀리 태양은 붉게 타오르고 나는 서서히 끌아당기는 힘을 받아 가속한다. 가까워 질수록 눈이 부셔 앞을 볼 수 없다. 빨라질수록 내 몸에도 불이 붙는다. 타버릴 것 같다. 밝다. ㅡㅡ. 매애앰 매애앰. 귀얼얼한 매미소리와 이마에 놓인 엄마의 손을 감각한다. 열이 있나 걱정하는 엄마의 손에 나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아니, 뜨기 싫었다. 뜨겁고 정열적인 마음에 난 푹 녹아버렸다.
낮잠
- 재준 -
여인의 오늘은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초록색 바탕에 빨간 선이 함께하는 테이블 보.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집 안 분위기를 책임지는 물건임이 틀림없다. 여인에게는 장난 가득한 개구쟁이 아이가 있을 것이다. 밤 사이 생겨난 선물에 신이나 온 집안을 마구 휘젓고 다니는 소년. 이 낮잠은 그런 아이에게 간신히 점심을 먹이고 얻어낸 휴식시간임이 틀림없다.
보라색과 붉은색
- 승준 -
여인은 팔을 베개 삼아 잔다. 무슨 꿈을 꾸는 걸까.
그녀는 홍(紅)조를 띈다. 아니, 보랏빛이니 자(紫)조라 해야할까. 열 때문인가? 죽을 병이라도 앓는걸까?
몸이 으슬으슬해 약을 먹었더니 졸음이 쏟아진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으슬으슬해 처방받은 약이다. 아차, 졸린 약을 빼달라고 말한다는걸 깜빡했다.
졸음이 쏟아진다. ‘침대로 가야하는데…’ 두 다리가 말을 듣질 않는다.
여인은 외롭다. 그녀 곁에는 아무도 없다. 아픈 채 잠든 그녀를 들어 침대로 옮겨줄 사람은 곁에 없다.
여인은 아프다. 가슴은 몸이 아픈 것보다 더 쓰리다.
‘나만 없어. 이번 봄에는 꼭…’ 여인은 다짐하며 잠에 든다.
여인은 미소를 띈다. 무슨 꿈을 꾸는걸까.
여인은 팔을 베개 삼아 잔다. 무슨 꿈을 꾸는걸까. 자조(紫潮)의 붉은 빛이 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