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 드립을 내리는 공돌이
연구실의 핸드드립 도구 덕에 나는 특별한 호사를 하나 누릴 수 있다. 그것은 커피 맛도, 향도 아니다. 커피 타임의 선율이다. 나른한 오후 2시, 까리용 소리가 아득히 들려올 때면 나는 커피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연구실의 핸드드립 도구 덕에 나는 특별한 호사를 하나 누릴 수 있다. 그것은 커피 맛도, 향도 아니다. 커피 타임의 선율이다. 나른한 오후 2시, 까리용 소리가 아득히 들려올 때면 나는 커피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촤르르르, 촤르르르.’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라인더에 콩 두 스푼을 퍼담는다. 그라인더의 굉음은 간간이 들리던 영재형의 웃음소리마저 삼키고, 그 덕에 나는 고요 아닌 고요를 짧게나마 만끽한다. 그라인더가 쉰 소리를 내기 시작할 즈음 황급히 손을 뻗어 딸깍. 커피포트 뱃속이 부글부글할 즈음 그라인더를 쿵쿵. 여과지 위에 커피가루를 톡톡 털어내고, 물을 살짝 적셔 뜸을 들인다. ‘뻐끔- 뻐끔.’ 부풀어 오른 커피빵에 작은 거품이 피어오른다. 첫 방울들의 노크소리가 끝날 때면, 이제 클라이막스. 잠시 숨을 멈추고 주전자를 쥔 손끝에 집중한다. ‘쪼르륵-.’ 물소리와 ‘톡톡-.’ 커피가 떨어지는 소리. 그 사이사이에 들리는 작은 맥박이 내 손끝의 지휘를 따라 화음을 만든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계에 다다른 심장이 최후의 리듬을 만드는 순간, 주전자 물이 바닥나며 연주는 막을 내린다.
사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기 때문에 그 맛이 어떨지는 모른다. 원중이 형의 구겨지는 표정을 보아하니 썩 잘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괜찮다. 나의 오케스트라는 대성공이니까. 내일은 영재형 커피를 내려볼까.
저자: 이*철, 이*경, 조*빈 (KAIST 전산학부, 2019 가을)
호사
여과지에는 멕시코 치아파스산 커피콩 25그램. 드립 포트에는 93도의 온기를 담은 물 60ml. 이제 드립 포트를 60도 각도로 기울인다. 물줄기는 가늘게. 여과지에 안 닿게끔. 그러면서 콩을 골고루 지나도록. 이 상태가 깨지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안팎으로 원을 그려야 한다. 내린 커피에 더해지는 물의 양은 오늘의 기분이 결정한다. 완성된 커피에서 모락모락 나는 김은 내 머리를 탁 트이게 한다. 일을 하다가 몽롱하거나 나른함을 느낄 때면, 나는 커피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 때나 이 분 반 동안 커피를 내리며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시간. 핸드드립이 내게 주는 호사다.
저자: 박*준, 원*호 (KAIST 전산학부, 2019 가을)
준비는 재빨라야 한다. 정수기 위 파란색 물통에 기포가 5개쯤 올라올 때면 전기 포트에 물이 알맞게 찬다. 전기 포트가 끓어오르는 사이, 그라인더 위 깔때기 속으로 커피콩을 알알이 떨어뜨린다. 빨간 버튼을 누르면, 커피 분말이 흩날리며 유리컵 바닥을 덮는다. 전기 포트와 그라인더의 떨림이 멈추면 준비는 끝난다. 온도는 중요하다. 황동색 주전자에서는 아직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납작한 여과지가 원뿔이 되도록 접어 드리퍼 위에 올리고, 물을 적신다. 여과지의 하얀색 바탕 위로 드리퍼의 사선 무늬가 드러난다. 그 위로 커피 분말을 켜켜이 쌓는다. 표면이 평평해지도록 드리퍼를 탕탕 친다. 이제 시간이 됐다. 두 발 위에 무게중심을 단단히 올린 후, 주전자를 들어 올린다. 하나의 커피 분말도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중심부터 천천히 물줄기를 내린다. 커피 분말 표면이 뻐끔뻐끔 숨을 쉬며 부풀어 오른다. 잠깐 정지. 호흡이 꺼져가길 기다리다가 분말 위로 다시 주전자를 기울인다. 미세한 거품들이 옅은 빛깔을 내며 표면 위로 떠 오른다. 갈색 방울이 드리퍼 꼭지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다가 이내 물줄기를 이룬다. 물줄기가 멎을 때, 머그잔 반쯤 담긴 커피를 맛본다.
저자: 장*재, 김*훈 (KAIST 전산학부, 2019 가을)